인천 청라에 위치한 베어즈베스트 골프클럽에서 펼쳐진 롯데 오픈 대회장 한켠에서 이국적인 이름의 선수가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를 주무대로 활동 중인 오스턴 김(26) 선수는 롯데 그룹의 후원 선수도 아니고, 주최 측이 특별히 초빙한 것도 아닙니다.
오스턴 김 선수의 아버지가 먼저 대회 사무국에 연락해 “딸이 출전할 방법을 알려달라”며 물었고,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가 이를 안내해 공식 출전이 성사됐다고 합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 규정에 따르면 정규 대회 출전 자격은 총 열다섯 가지인데, 그중 여섯 번째 항목이 ‘해당 연도 세계랭킹 30위 이내 선수(대회开幕 여섯 주 전 화요일 기준)’입니다. 오스턴 김은 현재 세계 22위이자 대회 시작 여섯 주 전에도 20위권 안에 들었던 터라 자격 요건을 자연스럽게 충족했습니다.
외국 국적 선수가 초청이 아닌 본 자격조항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 대회에 나서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2023년 유럽 투어의 강자였던 린 그랜트가 한국 대회를 경험한 적이 있고, 작년 3월에는 일본의 야마시타 미유 선수가 태국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 공식 행사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땅에서 열린 정규 한국여자프로골프 대회에 외국 국적 선수가 직접 나서서 경기를 펼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대회 관계자들의 반응도 한결같았습니다. 작년 주요 메이저 대회인 케이피엠지 여자파이거 챔피언십 공동 2위, 올해 에이치에스비시 월드 챔피언십 단독 2위 등 화려한 성적을 자랑하는 오스턴 김이 도대체 왜 청라의 대회에 등장했을까요.
2라운드가 끝난 뒤 오스턴 김은 “한국에서 열리는 랩지 대회(한국여자프로골프의 BMW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면서 한국여자프로골프 공식 대회도 꼭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라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막중한 메이저 일정을 소화하고도 곧바로 다음 메이저 현장을 찾아야 하는 빡빡한 체력전 속에서도 오스턴 김은 “일정이 너무 잘 맞았다. 랩지 공식 일정이 없는 주에 한국 대회를 끼워 넣으면 되겠다 싶었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전담 캐디 역시 함께 왔는데 오스턴 김은 “장거리 이동과 한국식 식사에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았지만 그래도 같이 와줬다” 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스턴 김은 “올 한 해 BMW 한 대회만을 위해 한국을 찾는 게 늘 아쉬웠다”며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한국 골프 팬들은 정말 특별하다. 미국은 조용히 경기를欣赏하는 분위기인데, 한국 팬들은 선수 이름을 외치고 응원가를 불러주면서 끊임없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그 열정이 너무 좋다” 고 한국의 독특한 팬 문화를 강조했습니다.
이민 2세인 오스턴 김은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나 플로리다 주에서 자랐지만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어릴 적 미국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한국어를 처음 배웠고, 대학 시절에는 밴더빌트대에서 한국어 수업을 2년간 수강하며 실력을 다졌습니다.
가깝게 교류하는 한국 선수로는 김세영, 임진희, 전인지 등이 있습니다. 김세영과는 작년 두 선수 한 조로 구성된 다우 챔피언십에서 호흡을 맞춘 적도 있습니다.
오스턴 김은 1라운드가 끝난 뒤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다며 2라운드 뒤에도 삼겹살을 꼭 다시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첫날에는 경기 직후 다섯 시간을 자고 새벽에 깨어나는 등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틀 동안 거의 졸면서 친 것 같다”라는 한마디와는 달리 280야드가 넘는 강력한 장타를 자랑하며 깔끔하게 컷을 통과하며 본인의 기량을 입증했습니다.
부친은 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본명으로 부르기보다 한국식 애칭인 ‘고은아’라고 자주 부른다고 하며 오스턴 김의 한국 본명은 김고은입니다.
아버지는 골프가 미래에 다양한 가능성의 길을 열어줄 통로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어려서부터 딸에게 골프를 접하게 했으며, 주니어 시절부터 두드러진 성적을 쌓아왔습니다. 프로가 된 뒤에는 한일 양국을 오가는 통로가 되었고,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1년에도 한두 차례 정도 한국여자프로골프 공식 대회에 딸을 동반해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오스턴 김은 다른 랩지 투어 선수들과는 달리 전문 전담 스윙 코치가 없는 드문 케이스입니다. “아버지가 제 코치입니다. 공식 자격증은 없지만 아버지를 100% 신뢰한다”면서 “투어에서 아버지를 코치로 모시는 선수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처럼 딸과 투어를 동행하는 경우는 없다” 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2023년 미국 2부 무대인 엡손 투어의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하며 극적인 정규 투어 자격을 따냈을 당시에는 어머니가 캐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직전 케이피엠지 메이저 대회에서는 공동 5위라는 쾌거를 달성한 뒤 한국에 도착한 것입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좋은 흐름을 이어가길 바란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스턴 김은 “그렇길 바라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안 좋은 시기가 있었지만 골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잘 안 되는 시간을 거쳐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고 그러다 보면 다시 잘 되는 시간이 찾아오는 법이죠. 최근에 좋은 성적이 나오긴 했지만 통제할 수 없는 부침이 또 찾아올 테니 차분하게 준비해야죠” 라며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