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양자 강한 유럽, 반도체·소재 강한 한국…딥테크 동맹 뜬다




“유럽은 기초 연구와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은 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낼 제조 인프라와 핵심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 투자 자본이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우주 항공, 방위 산업 등 유럽이 앞서가는 기초 기술들을 실제 상용 제품과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도체, 메모리, 첨단 소재, 배터리, 정밀 가공 기술 같은 한국의 산업 기반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운용사 옴네스캐피탈의 고위 임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한국은 첨단 기술이라는 새로운 산업 혁명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으며, 두 나라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무엇보다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12조 원 규모 운용사가 기업 인수 대신 첨단 기술에 집중하는 이유

옴네스캐피탈은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하는 사모펀드 운용사로, 2012년 프랑스 대형 은행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유럽 전역으로 투자 영역을 확대해왔습니다. 현재 약 70억 유로(약 12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며, 주로 인프라와 첨단 기술 중심의 벤처 투자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부터는 기존의 기업 인수 및 사모 대출 전략을 정리하고, 재생 에너지, 데이터 센터, 첨단 기술 등 연관성이 높은 분야로 투자 방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투자 전략을 축소한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성장 동력이 어디서 나올지를 다시 설정한 것입니다.

그 핵심에 있는 분야가 바로 딥테크(Deep Tech)입니다. 12조 원을 운용하는 유럽 사모펀드가 주목하는 딥테크에는 어떤 가능성이 담겨 있을까요?

옴네스캐피탈 임원은 딥테크 투자의 본질을 “당장의 매출보다 산업의 방향을 먼저 읽는 투자”라고 설명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처럼 반복 매출이나 고객 지표를 보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영역과 달리, 딥테크는 투자 시점에 매출이 거의 없거나 시장 자체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사례가 방위 산업 드론 투자입니다. 옴네스캐피탈은 유럽의 방산 드론 기업에 일찍 투자했습니다. 당시 방위 산업은 벤처 투자의 주류 분야라기보다 정부 조달과 대형 방산 업체 중심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옴네스캐피탈은 드론이 정찰과 감시를 넘어 전투 현장의 비용 구조와 작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원은 “오늘날 모두가 방산을 이야기한다면 투자자로서는 이미 늦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시장이 말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선제적 투자 방식은 우주 산업과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옴네스캐피탈이 우주 기업 및 양자 컴퓨팅 기업에 투자한 것도 당장의 매출보다 기술 주권과 산업 재편 가능성을 본 결과입니다.

우주 산업은 발사체와 위성, 궤도 서비스가 결합하는 새로운 인프라 산업으로, 양자 컴퓨팅은 향후 보안, 소재, 신약 개발, 인공지능 연산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반 기술로 평가됩니다. 옴네스캐피탈은 아직 시장이 완전히 열리기 전이라도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향후 산업 생태계의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프랑스는 원천 기술, 한국은 산업화 역량… 첨단 기술 협력 본격화

옴네스캐피탈 임원은 최근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딥테크 기업이 세계적인 원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실제 산업으로 확장하려면 반도체, 메모리, 소재, 배터리, 정밀 제조 같은 기반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출발점은 유럽에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제품화하고 대량 생산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한국이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임원은 한국의 강점을 ‘기술을 산업으로 바꾸는 힘’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유럽은 훌륭한 과학 기술을 갖고 있지만 모든 분야에서 강한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와 메모리, 소재, 배터리, 정밀 제조처럼 딥테크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영역에서는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디스플레이만 보더라도 유럽에는 더 이상 대량 생산을 담당할 주요 업체가 없습니다. 한국은 유럽 딥테크 기업들이 사업화 단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시장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임원은 특히 한국을 유럽 딥테크 기업의 사업 개발 파트너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옴네스캐피탈이 투자한 기업 중 인공지능 추론용 칩을 개발하는 한 업체는 삼성의 메모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럽 기업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어도 제품화와 양산 단계로 넘어가면 결국 반도체, 메모리, 소재 등 한국의 산업 생태계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시선은 단순히 한국 내 투자처 발굴이나 국내 투자자 확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깊어질수록 유럽과 한국 모두 특정 국가나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임원은 “유럽이 미국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한국도 특정 국가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계에서 양쪽 모두 더 다변화된 파트너십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옴네스캐피탈은 한국의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유럽 밖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단순한 아시아 거점이 아니라 기술 및 산업 협력을 만들 수 있는 파트너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원은 “옴네스가 유럽 밖으로 확장하는 다음 단계에서 한국은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지입니다. 한국에는 훌륭한 딥테크 스타트업이 많고,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는 투자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딥테크처럼 긴 호흡이 필요한 영역에서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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